마흔. 자신의 꿈을 진작에 접었을 나이다. 세파에 시달리며 현실과 타협하고…. 세상사 다 그렇게 꿈과 소망을 저버릴 시기인 것이다. 그러나 허성자 소리꾼, 그녀는 달랐다. 오히려 나이 마흔을 넘기고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한 도전에 나섰다. 그리고 마침내 목놓아 소망하던 국악인, 소리꾼의 반열에 올랐다. 6월 26일. 허성자 한국국악협회 평택시지부장을 만나 그녀의 소리인생을 들었다.

취미로 시작해 경기민요 무형문화재 제31호 이수자 지정을 받은 소리꾼 허성자. 그녀가 경기민요 무형문화재 제31호 이수자가 된 것은 2003년 12월 18일이다. 제4회 경기소리 이수평가에서 단 한 번의 평가로 합격된 된 것이다.
“그 때 생각하면 아직도 꿈만 같아요. 이수(履修)평가회는 까다로워서 두 세 차례 도전해도 떨어지는 전수생을 많이 봤어요. 처음으로 하는 평가회고, 많이 긴장돼서 될 거라고 기대를 하지 않았어요. 이수평가에서 통과되었을 때 느꼈던 기쁨과 행복감은 평생 잊을 수가 없지요.” 그녀에게 이수자 지정은 각별하다. 결혼 뒤, 나이 마흔이 넘어 본격적으로 어렵게 시작한 소리공부가 비로소 완성되고, 끝을 보았다는 의미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수자 지정은 자신의 목표이자 꿈이었다.
단순히 취미로 시작해서 전문가인 이수자가 되기까지 그녀의 노력은 눈물겨움 그 자체였다. 늦은 나이에 시작한 만큼 다른 사람보다 갑절은 힘들었다.
“전수자시절 5년 동안 현재 최근순 경기도립국악단 민요 악장 선생님하고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31호 보유자인 임정란 선생님에게 1주일에 3번씩 수원하고 과천을 오가면서 밤낮으로 사사받았어요. 소리를 하다가 눈감고 눈물을 쏟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에요. 힘들지만 포기하지 않고 버텨야 한다는 오기 때문에 그랬고, 다른 한편으로는 선의의 경쟁에서 남을 이기고 올라서야한다는 것이 슬퍼서 그랬어요.”

동네잔치 때마다 장구치고 흥 많던 아버지 끼 이어받아  
허성자 소리꾼은 전수자 시절의 어려움을 자신이 “충청도사람이었기 때문에 견뎌내지 않았나 싶다”고 말한다. 그녀가 태어난 곳은 충남 부여다.
그녀가 결혼하고 자녀를 다 키운 뒤 늦게 소리꾼이 되겠다고 나섰지만 사실 그 꿈의 씨앗은 어릴 적부터 고향에서 심어지고 자랐다. 어느 날 느닷없이, 뜬금없는 도전이 아닌 것이다.
“우리가 초등학교 때는 다 10리 이상 길을 걸어서 다녔어요. 아침에 가방 들고 학교에 가다가 보면 어르신들이 상투를 틀고 소리를 하면 그 소리에 푹 빠졌어요. 그래서 학교 가는 것도 까맣게 잊고 소리가 나는 곳으로 가곤 했어요. 대신 지각을 해서 선생님한테 혼났지요.”
초등학생 꼬마가 학교 가는 것도 잊고 우리 소리에 매료됐던 이유는 무엇일까. 소리꾼 허성자는 아버지 덕분이라고 말한다.   
“동네에서 우물은 우리 집 밖에 없었어요. 아침에 아버지가 대문을 열어줘야 물을 길어갔지요. 흥이 많으신 아버지는 동네잔치가 있을 때마다 장구를 치셨어요. 시조도 하시고요. 아마 제가 아버지 끼를 받아서 그랬나 봐요.”
그녀의 끼는 무용에도 관심을 보였다. 시골동네답지 않게 작은 무용학원이 하나 있었는데 거기서 무용하는 것을 훔쳐보다 아버지에게 잡혀가고 했던 것.
그녀의 아버지는 장구를 치고 시조를 읊고 흥이 많았지만 딸이 소리를 하는 것에는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말렸다. 소리를 하고 싶어서 안양예술중·고등학교에 가고 싶은 바람도 꺾였다.
“소리고, 무용이고 다 반대를 하셨어요. 여자가 무용을 하고 소리를 하면 기생이 된다고 그러셨던 거지요. 시골에 살면서도 안양예술중·고등학교에 엄청나게 가고 싶었는데 거기는 딴따라나 가는 거라고 집에서 못 가게 하셨어요. 나이 들고 보니까 기생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더라고요.”

청출어람, 제자 가르침에 역량 탁월
부모님의 반대로 그녀의 꿈은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국악을, 소리를 하지 못하게 된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학교 합창단활동 뿐이었다. 소리를 하고 싶은 욕망을 노래를 맘껏 부르는 것으로 달랬던 것이다.
가슴 한쪽에 소리를 하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은 어른이 되고, 결혼했어도 결코 꺽이지 않았다. 부천에 살던 그녀의 가족은 1982년 송탄 장안동으로 이사 왔다. 이사 와서도 그녀는 평택시합창단에서 활동을 이어갔다.
인수원 원장과의 우연한 만남은 그녀가 본격적으로 소리에 입문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녀의 나이 마흔이 넘어서다.
“원곡 가는 길에 인수원이라고 있어요. 여기 원장님이 서정리에 사셨는데 어르신들에게 수지침을 놓아주셨어요. 원장님이 모인 사람들에게 아리랑을 해보자고 제안을 하셨어요. 그때부터 몰래 공연을 보러 다니고 소리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어영애 선생님한테 배우다가 수원에 있는 경기도립국악단 최근순 선생님한테 배웠어요.”
이수자로 지정을 받은 다음 시작한 제자 교육. 어느 한 순간 소리꾼이 되겠다는 소망을 내려놓지 않았고, 본격적으로 소리를 배울 때는 악바리라고 할 정도로 노력을 다했던 그녀의 이력이 제자 교육에서 빛을 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우수한 제자를 많이 배출 한 것이다.
제자 중에 2006년과 2007년도에 서울에 있는 국악예술중·고등학교에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평택지역에서 국악중·고등학교에 간 것은 소리꾼 허성자 제자가 처음이다.
“제대로 가르치려는 열정도 남달리 컸지만 어렸을 때 안양예고에 가고 싶었던 간절한 마음이 생각나서 우수한 제자를 서울 국악중학교하고 고등학교에 보냈어요. 거기 들어가는 것은 정말 하늘의 별따기예요. 실력이 있어야만 갈 수 있어요. 학생 부모님 반대도 컸어요. 왜 서울로 보내서 부모하고 떨어져 생활하게 하냐고 화를 내셨지요.”
그녀의 제자들은 실력이 출중해 각종 대회 상을 휩쓰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제5회 경기민요경창대회와 제23회 대한민국국악제에 나가 단체 최우수상, 우수상, 개인상 1등, 3등을 차지했다. 
또 제10회 경기도 청소년 종합예술제에서 국악창 부문 우수상과 장려상, 제11회 경기도 청소년 종합예술제에서 최우수상, 제19회 경기국악제 전국경연대회 일반부 대상 수상….
“대회에서 제가 장단을 쳐주려고 나가면 다른 학교 선생님들이 놀래요. 또 나왔어? 하면서 기가 죽는 모양이에요. 제자들을 출전시키지 않으면 안 되겠냐고 물어보기도 하고요. 우리 제자들이 1등을 휩쓰니까 그런 것이지요. 학생들이 배우겠다고 대전에서도 오고 그랬어요.”

신푸리 예술단-끼와 국악사랑, 소리꾼 역량 펼치는 한 축
‘신푸리 예술단’(회장 정명자)은 허성자 소리꾼의 끼와 국악사랑의 역량을 펼치는 한 축을 형성해왔다. 
창단 주요 멤버로 참여하고 제2대 회장을 지내기도 했던 신푸리 예술단은 전통문화의 저변확대와 새로운 인재 발굴·육성을 통한 전통문화의 보존 확산에 기여하기 위해 2001년 5월에 창단했다.
신푸리 예술단은 2003년 ‘숯고개 아리랑’ 주제의 첫 정기공연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사)한국경기민요보존회(회장 허성자)와 공동으로 정기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또 시민을 대상으로 무료국악 강좌, 청소년 국악캠프, 재능기부 봉사, 이웃돕기 일일찻집 등 지역문화 확산과 봉사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2007년에는 미국 시애틀에서 초청공연을 펼쳐 해외에서 한국의 전통문화를 알리는 데 크게 기여하기도 했다.
신푸리 예술단은 동양과 서양의 음악을 접목한 퓨전 국악, 국악 동요 등 실험성이 돋보이는 공연으로 관람객의 호응을 얻고 있다.

국악협회 평택시지부장
허성자 소리꾼이 국악협회 평택지부장이라는 중책을 맡기까지 곡절이 많았다. 그녀가 끝끝내 가슴에 묻고 간다고 하지만 알 만한 사람은 모두 아는 아픔이 있다.
그녀는 한 동안 타 지역에서만 활동하고 평택의 무대에는 오를 수 없었던 슬픔을 간직하고 있다. 유달리 끼가 넘치고 소리꾼으로서의 열정이 컸던 만큼 좌절도 컸으리라.
그러나 그녀는 역경을 넘어섰다. 신푸리 예술단과 (사)한국경기민요보존회 활동은 큰 위로가 되고 힘이 되었다.
마흔이 넘은 나이에, 그것도 취미로 시작해서 어렵다는 이수자가 된 것처럼 시련을 딛고 2012년 3월 30일 한국국악협회 제5대 평택시지부장으로 취임했다.
“저는 배경도 없고, 가족의 지원도 별로 받지 못했어요. 그래서 다른 사람보다 열 배 백 배 힘들게 소리를 배웠어요. 그런 제가 국악협회 평택지부장까지 맡았으니 영광이지요. 거기에 보답하려고 임기 동안 평택의 국악발전을 위해서 노력을 다할 거예요.”
국악협회 평택지부에는 현재 시조분과, 기악분과, 민요분과, 무용분과, 농악분과, 창악분과, 서도분과 등이 있으며 각각의 분과마다 전문예술인 회원 50여 명이 활동하고 있다.
세계화와 과학의 발전, 정보통신 혁명 등으로 삶의 패러다임이 급격하게 전환되면서 우리의 전통문화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는 것이 현실이다. 허성자 지부장과 평택지부는 국악의 맥을 잇고 확산하는데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고 하잖아요. 소중한 우리 문화유산은 촌스럽고 고루하다는 편견을 버렸으면 좋겠어요. 솔직히 우리 것을 배우려고 하는 사람이 많지 않지만 우리 국악협회 평택지부 회원은 국악을 보존하고 국악의 우수성을 알려나가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제자가 잘 되는 것이 꿈
나이 예순을 이순(耳順)이라고 한다. 허성자 소리꾼도 어느덧 귀가 순해지고 인생에 달관 해야한다는 이순, 그 언저리에 와 있다.
삶이 원숙한 만큼 저 밑바닥에서 끓어오르듯 토해내는 소리 또한 깊이와 울림을 더하고 있다. 소리꾼이 되는 꿈은 이미 이뤘고 여기에 욕심이 없으니 이제 더 크게 바랄 것이 없다는 그녀. 그래도 앞으로 바람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제자 사랑이 특별한 소리꾼답게 제자 걱정이 앞선다.
“저는 여기에서 만족하고 있어요. 처음부터 욕심이 없기도 했고요.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제자들이 잘 되는 거예요. 국악으로 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한, 실력이 출중한 제자들이 설 자리가 많지 않아서 걱정이에요. 평택만의 문제가 아니긴 하지만 젊은 국악인이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열심히 노력하고 실력 있는 제자들이 자리를 잡는 동안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워요.”
지금도 활발한 국악활동과 서정동에 있는 ‘허성자 전통예술국악원’에서 제자를 가르치고 있는 허성자 소리꾼. 그녀는 오늘도 많은 사람이 외면하고 있는 국악을 보존하고 우리 소리 전수에 묵묵히 매진하고 있다.

한국국악협회 평택시지부장 허성자

- 한국국악협회 제5대 평택지부장 취임(2012년)
- 신푸리예술단 미국 시애틀 초청공연(2007년)
- 신푸리예술단 제2대 회장 취임(2006년)
- (사)한국경기소리보존회 회장 취임(2005년)
- 경기민요 무형문화재 제31호 이수(200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