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농악 상법고, 무동 이수자인 김종수(43)씨의 고향은 팽성읍 평궁리다.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평택농악을 접하고 자란 그는 1980년 제주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무동으로 참여한 것을 계기로, 30년 넘게 평택농악 지킴이를 자처하고 있다. 그가 기억하는 최은창, 이돌천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지난 10월 22일 본사 회의실에서 들어봤다.

▲  평택농악 김종수 ⓒ월간 평택문화

최은창 할아버지가 사준 과자 때문에 시작한 무동

“제가 처음 평택농악을 접했을 때는 1978년, 당시 제 나이 7살이었습니다. 그때 최은창 할아버지가 저에게 ‘과자 사줄테니, 할아버지 따라다니지 않겠느냐’고 해서 무동을 배우게 됐죠.”

평궁리에서 나고 자란 김종수 씨에게 어릴 적 최은창 옹은 명인이기 이전에 동네 할아버지였다. 먹을 것이 풍족하지 않았던 그 시절, 할아버지가 사주는 과자는 어린 꼬마에게 큰 유혹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없어진 할아버지 생가에서 목침(木枕)으로 무동 연습을 했어요. 할아버지 구령에 따라 목침 위를 오르고 내리며 무동놀이를 배웠고, 평택농악의 사미가 됐죠. 저를 포함해서 당시 무동으로 활동했던 8명 모두가 동네 형 동생들이었어요.”

이전의 기록들을 살펴보면 최은창 옹과 이돌천 옹은 1980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전문연희패 인원을 모아 평택농악이라는 명칭으로 활동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김종수 씨의 증언에 따르면 그보다 2년 전부터 최은창 옹은 평궁리 아이들을 모아 무동을 가르치고, 평택농악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당시엔 할아버지 집에서 연습하는 것이 정말 좋았어요. 연습이 끝나면 할아버지가 밥도 주셨거든요. 부모님이 일하시느라 늦게 들어오시면 저는 항상 할아버지 집에서 놀았어요.”

무동을 배우기 시작한 후 그의 기억 속 최은창 옹은 친할아버지 같은 존재로 바뀌었다. “최은창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자상하셨던 모습이 먼저 떠올라요. 남들은 할아버지를 김일성 또는 독불장군이라고들 하는데,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던 저한테는 정말 친할아버지 같았습니다.”

그러나 김 씨도 최은창 옹에게 호되게 혼난 적이 적지 않았다. “1980년 제주도에서 열린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출전 때의 일이었어요. 저는 그때 무동 중 가장 중요한 사미 역할을 맡았거든요. 그런데 경연대회날 아침 식사 중 물컵이 떨어져 깨지는 바람에 발뒤꿈치를 열두 바늘이나 꿰매는 부상을 입었어요.”

걷기도 힘들 정도로 큰 부상이었다. 하지만 대체할 인원이 없었던 탓에 그대로 공연에 오를 수밖에 없었고, 무동놀이 중 통증을 참지 못한 김 씨는 실수를 연발했다.

“공연 끝나고 무지하게 혼났죠. 그것도 못 참느냐고. 근데 웃긴건 그때 대회에서 저희가 특별상을 받았거든요? 이유가 너무 잘해서였어요. 심사위원들이 ‘평택농악은 전문연희패이기에 대상을 주기에는 적합지 않다’고 했어요. 그렇게 수상이 끝나고 나니깐 최은창 할아버지가 또 저한테 핀잔을 주더라고요. 실수 좀 더 하지 왜 그렇게 잘해서 대상 못 받게 했느냐고요. 재밌는 분이셨어요. 하하하.”

그렇게 평택농악의 일원이 된 김종수 씨는 세월이 흘러 중학생이 되어 본격적으로 상모를 배우게 됐다.

“상모 처음 배울 때도 많이 혼났죠. 엄격하셨거든요. 그래도 할아버지는 돈이 없어 상모를 못샀던 저에게 자신이 쓰시던 상모를 빌려주시기도 하고, 상모가 잘 안돌아간다고 말씀드리면 손수 다 뜯어서 고쳐주셨어요. 그때 할아버지 어깨 너머로 배워서 지금은 혼자서 상모를 고쳐 쓰고 있어요.” 자신을 친할아버지처럼 따르던 김종수 씨를 친손자처럼 대해줬던 최은창 옹이었다.

이렇듯 김종수 씨의 기억 속에서는 엄격하지만 자상한 할아버지였던 최은창 옹. 그런 그에게 김일성, 독불장군이라는 별명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음···. 뭐 제 기억에는 일단 공연 가면 밥을 사주신 적이 없었어요. 무동들한테도요. 회계장부도 본인이 직접 다 관리하실 만큼 돈 문제에는 철저하셨는데, 아마 훗날을 위해 재정을 탄탄하게 하시려고 그랬던 게 아닌가 싶어요.”

각자의 기억은 희석되기 마련이지만, 지금의 평택농악보존회 원형을 닦은 것이 최은창 옹이라는 사실에 비춰 보면 김일성, 독불장군이라는 별명 또한 단체를 이끌기 위한 강인한 리더십에서 말미암은 것으로 짐작할 수 있었다.

끝으로 농악인 최은창에 대해 말해달라고 부탁해봤다. “두말 할 나위 없이 최고였죠. 지금은 상쇠 최은창으로만 기억하지만, 할아버지는 모든 악기와 기예를 섭렵한 웃다리 지역 최고의 명인이었어요. 판굿을 할 때면 상쇠부터 시작해서 고사덕담, 무동놀이, 마지막 열두발 상모까지 혼자 다 맡으셨던 분이시죠. 지금도 할아버지랑 견줄만한 분은 없다고 봐요.”

▲ 평택농악 명인 고 최은창 옹   ⓒ월간 평택문화

이돌천 “너 상모 돌리다 나랑 얼굴 마주치면 침 뱉을거야”

현재 평택농악 상법고수로 활동하는 김종수 씨는 이돌천 옹에게 상모놀이의 꽃, 양상을 배웠다. “최은창 할아버지한테 처음 상모를 배웠지만, 사실 양상(상모의 긴 물 체를 좌우로 1회씩 돌리는 기술)은 잘 못하는 편이었어요. 이돌천 할아버지는 주로 공연 때만 뵐 수 있었는데 그때마다 할아버지한테 양상을 배웠죠.”

최은창 옹이 이끌던 평택농악은 공연이 있을 때면 무조건 2시간 전에 공연장에 도착해 기다리는 관습이 있었다고 한다. 천안에 거주하는 이돌천 옹을 자주 볼 수 없었 던 김 씨는 매 공연마다 주어진 2시간의 대기시간 동안 양상을 배웠던 것이다.

상모를 배우기 시작하고 1년 쯤 지났을 때, 김종수 씨와 이돌천 옹 사이에는 사건(?)이 하나 벌어졌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공연 전에 상모를 연습하고 있는데 이돌천 할아버지가 오 시더니 ‘음, 이제 됐어’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아 이제 인정받나 싶었는데 할아버 지가 한 말씀 덧붙이셨어요. ‘근데 너 공연 중에 상모 돌리다 나랑 얼굴 마주치면 침 뱉을거야’라고요.”

상쇠의 가락에 맞춰 양상을 치는 법고수들은 실수하지 않는 이상 서로 얼굴을 마주 칠 일이 없다. 이돌천 옹의 말은 공연 중 실수하지 말라는 뜻이었고, 김 씨는 그 정도로만 이해했었다.

“그런데 그때는 아무래도 서툴다보니 양상 치다가 할아버지랑 눈이 마주쳤어요. 진짜로 얼굴에 침을 뱉으시더라고요. 하하하.”

지금이야 웃으며 말하는 에피소드지만, 한창 사춘기 무렵이었던 당시에는 자존심 상하는 일이였다. 김 씨는 그날 이후로 절치부심 상모를 연습했고, 이윽고 이돌천 옹 에게 완전히 인정받아 법고수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됐다.

한창 얘기를 듣다보니 현재 상법고 김종수가 본 상법고 이돌천의 위상이 궁금해졌다. “이돌천 할아버지가 치는 양상은 정말 예뻤어요. 이건 누구나 다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남들은 무척 힘들게 상모를 돌리는데 할아버지는 힘 안들이고 살짝 살짝 움직이면서도 빠르게 상모를 돌리셨어요. 지금 생각해도 그건 너무 신기하더라고요.”

이돌천 옹은 최은창 옹이 공연 중 꽹과리를 맡기는 유일한 사람이기도 했다. 상쇠이면서 무동놀이도 하던 최은창 옹이 밑동을 하기 위해 꽹과리를 손에 놓을 때면 부쇠가 아닌 상법고 이돌천 옹에게만 꽹과리를 맡겨 가락을 치게 했다고 한다.

“두 분만의 확실한 믿음이 있던 것 같아요. ‘내가 나선 판굿의 가락은 이 사람에게 만 맡길 수 있다’ 이런 것이겠죠. 이렇게 얘기하다보니 할아버지들에 대한 추억이 새록새록 생각나네요. 겉으로는 툴툴대지만 늘 따뜻하게 대해주셨던 이돌천 할아버지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