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9년 평택농악의 상쇠 전수조교로 지정된 조한숙(55세) 씨는 1995년 단원으로 합류한 후 20년간 평택농악에 몸담아왔다. 그녀가 기억하는 최은창 옹과 이돌천 옹은 어떤 모습일까. 지난 10월 17일 평궁리 평택농악전수회관에서 그녀를 만났다.

▲ 평택농악 조한숙 전수조교   ⓒ월간 평택문화

차돌맹이 이돌천
조한숙 씨가 이돌천 옹과 처음 만난 것은 1976년, 그녀의 나이 14살 무렵이었다. “천안의 무용학원에서 설장고를 배우고 있었는데, 그때 이돌천 선생님과 김용래 선생님이 그 학원으로 농악을 가르치러 오셨어요. 그게 첫 만남이었죠.”

학원에서의 첫 만남 후 조 씨는 김용래 평택농악보존회장과 함께 이돌천 옹이 가장 아끼는 제자로 평생을 곁에서 모시게 된다. 이돌천 옹의 제자사랑을 말해주는 일화가 있다.

“선생님을 만난 지 얼마 안돼서 제가 쓰던 장고판이 깨진 적이 있어요. 가죽으로 만들어진 장고판은 당시 고가의 물품이라 쉽사리 살 수 없었는데, 마침 그것을 보신 이돌천 선생님이 깨진 판을 일일이 손으로 꿰매주셨어요.”
두꺼운 가죽판을 이불 꿰는 바늘로 한 땀 한 땀 꿰매기란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신기한 것은 선생님께서 꿰매주신 판이 새판보다 더 오래 갔었어요. 선생님의 정성이 깃들어서 그랬을까요?”

이후 조 씨는 이돌천, 김용래와 함께 전국 각지의 경연대회가 열릴 때마다 참여했다. 당시만 해도 현재처럼 지역별로 조직화된 농악단이 없었기 때문에 전국 각지에서 대회출전 요청이 있으면 지역마다 흩어져 있던 명인들이 한데 모여 팀을 꾸리곤 했다.

“이돌천 선생님과 전적으로 함께하게 된 것은 선생님께서 ‘천안 흥타령 농악단(현 천안시립 흥타령 풍물단)’을 결성하면서부터였어요.”

이돌천 옹은 자신이 살던 천안 불당동의 중군봉산 언저리에서 매일같이 연습하며 ‘방축골 농악대’를 결성했었다. 이후 1987년 ‘방축골 농악대’는 ‘천안시립 흥타령 농악단’으로 재정비되며 조한숙 씨도 본격적으로 합류하게 된다. 조 씨는 초대 이돌천 옹 이후 2대 김용래를 거쳐 현재 ‘천안시립 흥타령 풍물단’의 3대 단장(꼭두쇠)을 맡고 있다.

이돌천 옹은 중요무형문화재 상법고 기능보유자였다. 상법고 이돌천의 모습은 어땠을까? “체격은 왜소하셨지만, 별명이 차돌맹이일 정도로 단단하셨어요. 특히, 상모놀이할 때 선생님은 양상이 예쁘기로 전국에서도 유명했어요. 어느 판에 가도 선생님을 상법고로 모실 정도였으니까요.”

현 평택농악보존회장인 김용래의 상모놀이는 현역으로 활동할 당시 전국 제일이었다고 전해진다. 그 김용래에게 상모를 가르친 이가 바로 이돌천 옹이다. 제자들에게 자상했던 이돌천 옹도 가르칠 때만큼은 엄격했다고 한다.

“김용래 회장님이 상모놀이를 배울 때 가로 세로 10cm 안팎의 나무판대기 위에서 솟음법고(제자리 뛰면서 상모를 돌리는 기술)를 하라고 시키셨대요. 사실 누구든 제자리서 반복해서 뛰다보면 균형이 흐트러지기 마련인데, 이돌천 선생님은 한 치의 실수조차 용납하지 않으셨어요.”

이돌천 옹은 법고 외에도 쇠와 고사소리에도 능했다. 실제 ‘천안시립 흥타령 풍물단’에서 그는 상쇠를 맡았고, 조한숙 씨는 이 옹 생전에 고사소리를 채록했다.

“현재 문화재 등록에서는 기능을 종목별로 분류해서 지정하지만, 당시 예인(藝人)들은 다방면에서 두루 능한 소위 멀티플레이어였어요. 그런 두 분이 만나 평택농악을 결성하고 현재의 모습으로 완성하신 거죠.”

1994년 갑작스런 병환으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이돌천 옹은 하루도 연습을 거르지 않았다. 아직도 그의 모습을 회상하는 조한숙 씨의 눈에는 아련함이 가득했다.

“90년 초 제가 천안에서 무용학원을 하며 선생님께 꽹과리를 배울 때, 선생님은 여름이든 겨울이든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학원으로 오셔서 불민한 제자를 가르쳐주셨어요. 아직도 그 모습을 생각하면 안타깝고 그립습니다.”

▲ 조한숙 씨와 생전 이돌천 옹   ⓒ월간 평택문화

나에게만은 자상했던 최은창 선생님
평택농악보존회원들이 기억하는 최은창 옹의 이미지는 대부분 비슷하다. 바로 ‘호랑이 선생님’. 많은 사람들이 최은창 옹의 불호령을 들으며 농악을 배웠고, 그 강인한 리더십은 지금도 평택농악을 지키는 힘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조한숙 씨가 기억하는 최은창 옹의 이미지는 다른 이들과는 조금 달랐다. “글쎄요···. 다들 엄청 무서웠다고들 하는데 제가 여자라서 그런가? 저한테는 자상하게 가르쳐주셨어요.”

조한숙 씨가 평택농악에 합류한 때는 1995년 이돌천 옹과 김용래 회장의 권유에 의해서다. 물론 이전부터 함께 공연을 하며 최은창 옹과 교류해왔지만, 쇠를 배우기 시작한 것은 이돌천 옹으로부터였다고 한다.

“그래도 최은창 선생님께 배운 쩍쩍이춤 같은 것은 이돌천 선생님께 배울 때랑은 가락이 좀 달랐어요. 아마 각자 배운 스승이 달랐기 때문인 것 같아요.”

조한숙 씨는 1대 최은창, 2대 이성호를 거쳐 현재 평택농악의 판제를 이끄는 3대 상쇠이자 전수교육조교다. 지금의 상쇠 조한숙은 이돌천에게서 자라나 최은창에서 완성됐다.

그녀가 기억하는 최은창 옹은 상쇠뿐만 아니라 전국 제일의 고사소리 명인이었다. 1960~70년대 세간에는 ‘고사 잘하기는 최은창이요, 돈 잘 뺏기는 김복섭이다’라는 말이 떠돌 정도로 최은창 옹의 고사소리는 누구도 범접 못할 경지였다고 한다.

“걸립을 나서면 고사반을 차릴 때가 있어요. 그러면 고사소리를 얼마나 잘하느냐에 따라서 고사상에 쌓이는 지전의 갯수가 달라지죠. 최은창 선생님은 한번 고사소리를 시작하면 2시간 넘게 하신 적도 있다고 해요. 그만큼 많은 가사를 다 외우셨던 거죠.”

인터뷰를 진행하는 도중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생겼다. 조한숙 씨는 최은창 옹이 자상했다고 증언했지만, 다른 사람들의 말대로 최은창 옹이 불같은 성격이었으면 이돌천 옹과의 사이는 어땠을까 하는 것이었다.

“최은창 선생님이 상쇠를 맡고 이돌천 선생님이 상법고를 맡아서 판제를 이끄실 때는 정말 호흡이 잘 맞았어요. 우리는 그분들이 이끄는 흐름에 따라 항상 즐겁고 신나게 공연을 하곤 했죠. 간혹 판을 빠르게 끝내야 할 때는 눈빛만으로도 매끄럽게 진행할 정도로 두 분은 환상의 호흡을 자랑하셨어요.”

이미 평택농악 결성 이전부터 남사당 등에서 오랜 시간 함께 가락을 맞춰온 최은창 옹과 이돌천 옹 사이에는 다른 이들이 알 수 없는 끈끈한 무언가가 있었던 모양이다.

평택농악을 결성한 상쇠와 상법고는 이제 악기만이 남았지만, 그들의 신명나는 가락과 환상적인 기예는 제자들의 기억을 타고 흘러 평택농악보존회라는 이름으로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