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간 평택문화

1992년 고 이돌천 선생의 소개로 평택농악에 합류한 황영길(47세)씨는 이돌천 선생과 김용래 회장에게 상모를, 고 최은창 선생에게 고사소리와 쇠, 장고를 배웠다. 2005년 이수자로 선정됐고, 2012년에는 쇠와 장고, 법고 부문의 전수교육조교로 선정됐다.

짧은시간 긴 여운, 고 이돌천 선생
어린 시절부터 생계를 위해 농악을 해 온 1세대와 달리 황영길 씨는 늦은 나이에 농악을 시작했다.
“대학교 때 탈춤 동아리에 들어갔다가 경기가락을 제대로 배워보고 싶어졌어요. 우리 가락을 이어나가야겠다는 소명의식도 생겼고요. 3학년 때 무작정 이돌천 선생님을 찾아갔어요. ‘뭐 할라고 이걸 하느냐. 돌아가라’ 하시기에 ‘학교 자퇴하고 왔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제자로 받아주셨죠.”
그렇게 이돌천 선생과의 1:1 가르침이 시작됐다. 늦제자라 다른 사람들과 같이 배울 수 없는 그를 이돌천 선생은 열성적으로 가르쳤다.
“천안 쌍용동 뒷산에서 선생님께 상모를 배웠죠. 그때가 1980년대 말쯤이니 선생님 연세가 정말 많으셨는데도 어려운 상모기술들을 하나하나 직접 보여주셨어요. 가르쳐주다가 다리 힘이 없어서 옆으로 픽 쓰러지기도 하셨죠. 그렇게 선생님한테 3~4년을 배웠습니다.”
이후 이돌천 선생님의 소개로 천안시립 흥타령 풍물단에 들어가 활동하다가 다시 평택농악에 오게 됐다.
“선생님은 제 재주가 아깝다며 평택에 무형문화재 단체가 있으니 기회가 있으면 보내마고 말씀하셨어요. 그러다 평택농악에 자리가 생기자 바로 저를 올려보내셨죠.”
김용래 회장과의 인연도 천안 흥타령 풍물단에서부터 시작됐다.
“제가 혼자 연습하다보니 다른 사람하고 맞춰볼 기회가 없었거든요. 이돌천 선생님은 종종 ‘용래야! 와서 같이 맞춰줘라’하고 시키셨죠. 천안에 있을 때, 저 때문에 김용래 회장님이 고생이 많았어요.”
그를 농악의 세계로 이끌고, 각별히 아껴주셨던 이돌천 선생은 얼마 못 가 돌아가셨다. 그러나 그 감사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예인들은 절대 자기 악기를 남에게 맡기지 않아요. 화장실 갈 때도 남이 치지 못하도록 채는 꼭 챙겨가죠. 그런데 이돌천 선생님은 여기 들어오실 때면, 저 입구에서 가방을 딱 들어보이십니다. 그럼 제가 쪼르르 달려나가서 그 가방을 덥석 받아들어요. 선생님의 가방을 받아들 때 제가 얼마나 뿌듯하고 행복했는지 모르실거에요.”

“보아라, 이게 가르침이다”, 고 최은창 선생
황영길 씨는 이돌천 선생의 소개로 평택농악에 와서 최은창 선생을 처음 만났다. 최은창 선생에게는 장단과 판제를 배웠고, 최은창 고사덕담도 전수받았다.
“저는 복이 많았어요. 이돌천 선생님도 그랬고 최은창 선생님도 제게 아주 많은 것을 가르쳐주시려 하셨죠.”
어깨 너머로 혼자 배우고 익힌 습관이 있기에 앉혀놓고 하나하나 가르쳐주는 것에는 인색한 1세대들, 실제로 최은창 선생은 황 씨가 평택농악에 들어온 후에도 처음 3~4년 동안은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았단다.
“예전에는 대학생들이 농악 전수교육을 받으러 왔어요. 일주일간 머무르며 기초과정을 배우고 나가는 형태인데요, 학교가 바뀌면 또 새로운 학생들이 오죠. 저도 따로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어서 그냥 여기 숙직실에서 머무르면서 학생들 수업에 껴서 같이 배웠어요.
기본장단만 3~4년을 배우니, 어쩔 땐 치면서 졸리기도 하고 그래요. 그런데 어느날, 매일 쳐오던 장단이 낯설게 들렸어요. ‘어! 저 가락이 원래 저게 아니었네?’
밤에 혼자 연습실에 와서 꽹과리 대신 목침을 뚜두두 두드리며 수 천번 쳐온 장단을 다시 연습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최은창 선생님이 들어오시더니 ‘그 가락이 그게 아니다. 이게 맞는거다’하면서 처음으로 가락을 쳐 주셨죠.”
황 씨가 그간 치고 있었던 게 제대로 된 게 아니었다는 걸 깨우치자 최은창 선생은 비로소 그를 제자로 받아들인 것이었을까? 그때부터 최은창 선생의 가르침이 시작됐다.
이돌천 선생이 돌아가시고 난 후, 평택농악보존회에서는 최은창 선생과 김용래 회장 외에는 가르치는 걸 허락한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4~5년쯤 지난 어느 일요일, 최은창 선생이 그를 찾아와서는 “따라와라”고 하시더니 지하로 내려갔다.
“꽹과리 하나를 탁 주시곤 ‘받아봐라’ 하시더니 변주가락을 연주하셨어요. 그걸 듣고 맞추고, 또 듣고… 그렇게 한참을 까다로운 변주가락을 받았죠. 하고 나니 온몸이 땀으로 젖어 있었죠. 한 시간 정도 한 것 같은데 시간을 보니 겨우 5분이 지나있었어요. 선생님은 꽹과리를 탁 내려놓으시더니 ‘됐다’라고 하셨죠. 그 다음부터 힘이 좀 드시면, 저더러 학생들을 가르치라고 하셨어요.”
최은창 선생이 가르치는 방식은 항상 그랬다. 한번 보여주고는 제자가 그걸 못 받으면 바로 ‘저 친구는 아닌가보다’하고 그만두는 식이었다. 상모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날, 절 부르시더니 열두발 상모를 돌리시면서 ‘이건 무슨 사위고, 이건 뭐다’ 하면서 보여주셨어요. 그리고는 상모를 건네주고는 휙 나가셨죠. 그리고 일주일 뒤 공연이 있었는데, 갑자기 ‘네가 나가라’ 하셨어요.”
황영길 씨가 학생들을 가르치게 됐을 때도, 최은창 선생은 처음 한 달 동안 들어와서 참관하셨다. 칠판에 쓰고, 구음으로 풀어가면서 가르치는 것을 물끄러미 보셨단다.
“선생님은 가르칠 때 혼자 연주하시고는 들었으면 알아서 쳐 봐라 하는 식이셨어요. 옛날 어르신들의 가르치는 방식이 다 그랬죠. 저는 처음에는 선생님이 구음을 못 하시는 줄 알았을 정도니까요. 제가 칠판에 하나하나 적어가며 가르치자 ‘야! 너처럼 가르치면 세상에 풍물 못 칠 놈이 어딨냐!’ 하셨어요.(웃음)”
최은창 선생은 이것저것 말을 많이 하지도 않으셨고, 대놓고 칭찬하는 일도 없었다. 그러나 유머러스한 면을 가진마음 따뜻한 분이었다. 영길 씨도 나중에 최은창 선생의 사모님을 통해 댁에서는 황 씨의 칭찬을 많이 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알았다고.
“선생님은 선문답 같은 이야기를 많이 하셨어요. 결말이 없이 화두를 던지고는 그게 끝이었죠. ‘대체 왜 나한테 이 얘기를 하실까’ 고민하곤 했는데, 지나고 보니 그 의미들이 삶의 갈피갈피에서 떠오르곤 합니다.”
황영길 씨는 여전히 스스로의 모습에서 최은창 선생님을 찾고 있었다.
“지금도 연습할 때면 선생님이 연주하시던 쇳소리가 ‘깨갱깽깽’ 귀에 선하게 들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