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생명은 언젠가 죽을 수밖에 없는 모든 생명체의 꿈이다. 은하철도 999를 타고 영원한 생명을 찾아 안드로메다별을 향해 떠났던 철이(애니메이션 ‘은하철도 999’), 늙지 않고 영원히 살기 위해 명약 불로장생초를 찾았던 진시황, 죽어서까지 영원히 존재하고 싶은 욕망이 담긴 미이라….
문제는 ‘시간’이다. 시간이 가장 위험한 것이다. 사람을 시간에 갇힌 존재라고 하는 뜻이 여기에 있다.  
과학기술과 정보통신의 발달로 ‘공간’의 제약은 많이 극복되었다. 마침내 인터넷은 국경을 무의미하게 할 만큼 공간을 자유자재로 넘나들게 했다.
남는 것은 여전히 시간이고, 치명적이다. 시간이 몰고 가는 죽음. 거기서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죽음과 마주할 때에야 비로소 자신의 삶과 만나는 기막힌 역설.
영원불멸에 대한 소망이 자리한 곳은 아마 시간 앞에서 소멸할 수밖에 없는 삶의 적나라한 모습과 마주하는 언저리가 될 것이다.

▲ 동천리 고인돌   ⓒ월간 평택문화

고인돌, 무덤이자 성역이고 죽음 이후를 말해주는 종교
무뚝뚝한 돌은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예부터 ‘영원불멸’의 상징으로 자리해왔다. 삶, 죽음, 영원불멸에 대한 소망….
결국, 고인돌이다. 고인돌은 무덤이자 성역(聖域)이고, 죽음 이후를 말해주는 종교가 깃들어 있다. 고인돌이 단순한 돌덩이가 아니라 그 어떤 책보다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해주는 이유다.
지난 5월 16일에서 17일까지 이틀 동안 평택지역 고인돌을 찾아 나섰다. 첫 날은 해가 다 저물도록 1기도 찾지 못했다. 성스러운 것은 본디 쉽게 내보이지 않는 것일까….
그러나 그것은 이유가 될 수 없었다. 구할 수 있는 대로 고인돌이 어디에 있는지, 주소와 위치가 표시된 문헌과 자료를 모두 손에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헌에 기록된 주소를 네비게이션에 치면 대부분 검색할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인돌 주변의 지형지물 기록도 마찬가지다. 평택지역은 개발이 빠르게 진행되는데다 오래 전 불확실한 기록이어서 현재와 일치하는 것이 거의 없었다.

마을 사람이 넓적바위라 부르는 ‘동천리 고인돌’
어렵게 어렵게 찾아내 처음으로 마주한 고인돌은 진위면 동천리에 있는 ‘동천리 고인돌’이다. 진위면 무봉산성 동남쪽에 위치한 동천리 마을에 위치한다고 해서 ‘동천리 고인돌’이라고 부른다.
덮개돌의 크기는 360×220×80cm 정도다. 개석식 고인돌로 추정되며 암질은 화강암이다. 장축방향은 동-서를 향하고 측면으로 치석한 흔적이 확인된다.
마을 사람들 중에 이것이 고인돌이라고 바르게 알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어르신들은 그냥 넓적바위라고 불렀다. 바위 윗부분이 평평해서 옛날에 할머니와 어머니들이 초를 켜놓고 치성을 드렸다고 한다.
고인돌에서 불과 5~6m 옆에 작은 무덤 하나가 있다. 3200여 년의 시간차를 두고 나란히 놓여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과 현대인의 무덤. 옛날이나 지금이나 시간 앞에서 소멸할 수밖에 없는, 우리들의 나약한 존재와 마주하니 마음이 울렁거린다.

▲ 서탄면 금암리 고인돌   ⓒ월간 평택문화

서탄면 ‘금암리 고인돌’. 개석식으로 평택에서 드문 유적 평가
이튿날은 하루 전의 실패(?)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문헌의 위치 설명 글을 읽고 또 읽고…. ‘금암리 고인돌’을 먼저 찾았다. 주위사람들에게 혹시 금암리에 고인돌이 있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열이면 열 모두 돌아온 대답은 “모른다”였다.
‘금암리 고인돌’은 서탄면사무소 뒤쪽 언덕에 있다. 서탄면 금암리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덮개돌은 화강암 계통의 암질로 크기는 275×180×75㎝ 정도 된다. 고인돌 형식이 개석식으로 학계에서는 평택지역에서 찾아보기 드문 유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금암리 고인돌은 동천리 고인돌처럼 무덤 옆에 있었다. 죽음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것. 고인돌이 있는 곳은 작은 언덕이어서 마을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 서탄면 장등리 추정고인돌   ⓒ월간 평택문화

서탄면 추정 ‘장등리 고인돌’
자동차를 운전해서 자리를 장등리로 이동했다. 장등리에는 추정 고인돌이 있다. 말 그대로 고인돌로 추정된다는 뜻이다. 구억리마을 입구 삼거리에서 보국사 이정표를 따라 약 50m 가량 진행하면 작은 밭 한가운데 있다.
땅 위에 노출된 부분은 원추형으로 크기는 길이 80㎝, 높이 60㎝ 정도다. 장등리 추정 고인돌은 의외로 쉽게 찾았다. 암흑색의 고인돌에서 켜켜이 고여 있는 숱한 시간이 전율로 다가왔다.
오산AB(K-55) 미군기지 인근에 자리한 만큼 바로 옆에 ‘빅토리아 빌라’를 비롯해 미군영외 거주자에게 임대해주는 주택이 들어섰다. 이 고인돌을 세웠던 청동기시대 우리 조상들은 훗날 이곳에 미군이 들어올 것이라고 꿈에나 생각했을까.

수월암리-고인돌의 보고(寶庫)
이제 남은 곳은 수월암리와 내천리. 문헌에 4기의 고인돌이 발견되었다고 보고된 수월암리를 먼저 찾았다. 문헌에는 고인돌이 위치하는 자리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서탄면 소재지에서 16번 군도를 타고 새말저수지를 지나면 우측으로 수월암리를 알리는 표지판이 나온다. 표지판을 따라 진입하면 수월암 2리에서 1리로 넘어가는 당고개가 보인다. 고인돌은 이 당고개 북쪽 능선(해발 50m 지점)을 따라 4기가 분포하고 있다.
1호 고인돌은 등산로 주변에 위치하며 바로 인접한 서쪽 사면으로 과수원이 자리한다. 고인돌의 재질은 화강편마암이며, 별다른 하부구조는 눈에띄지 않아 개석식으로 판단된다. 덮개돌의 평면 형태는 타원형에 가깝고, 규모는 220×177×50㎝ 정도이다. 장축방향은 남-북을 향하고 있다.
2호 고인돌은 1호에서 북쪽으로 약 20m 지점에 위치해 있다. 화강편마암질의 개석식 고인돌이다. 덮개돌의 평면 형태는 장방형으로, 290×198×62㎝ 정도이며, 장축방향은 남-북을 향하고 있다.
3호 고인돌은 1호에서 서남쪽으로 약 100m 정도 떨어져 있고 밤나무밭 남쪽이며 야산의 북쪽 경사면에 해당한다. 덮개돌은 위에서 굴러 떨어진 듯하며 고인돌의 남쪽 면은 지하에 묻혀있다. 덮개돌의 평면 형태는 장방형에 가깝고, 규모는 270×250×60㎝ 이다. 재질은 화강암질이며 장축방향은 동-서를 향하고 있다.
4호 고인돌은 3호 고인돌 우측에 접해 있으며 상단 부분이 지하에 묻혀 있다. 덮개돌의 평면 형태는 장방형에 가깝고, 규모는 280×240×54㎝ 정도이다. 현재 덮개돌 주변으로 받침돌로 추정되는 3매의 석재가 관찰되나, 정확한 사항은 정밀조사가 이루어져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암질은 화강암이며, 장축방향은 남-북을 향하고 있다. 받침돌로 추정되는 석재는 덮개돌의 남쪽에 2개, 서쪽에 1개가 있는데 그 규모는 서쪽의 것이 80×66×35㎝ , 남쪽의 것이 각각 131×30×80㎝ , 176×30×105㎝ 이다.’
그러나 찾고 뒤져도 헤매기만 할 뿐 고인돌은 보이지 않았다. 돌고 돌아 제자리로 오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마지막으로 마을 어르신에게 찾아가 물었다.
“새로 지은 경동 나비엔 공장 앞에 가봐. 거기로 죄다 옮겨놨어.”
이게 무슨 소린가. 고인돌을 옮겨놓았다고? 급하게 경동 나비엔 공장 앞으로 차를 몰았다. 공장 입구 오른쪽 잔디밭에 고인돌이 몰려있었다. 고인돌 군(群)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처럼 보였다. 언뜻 눈에 띄는 것만도 4기는 훨씬 넘었다. 그런데 가까이 가서 표지판을 보고 다시 한 번 놀랐다.

‘대형 탁자식 고인돌 2기와 주변에 소형 개석식 고인돌 22기 등 총 24기의 고인돌이 무리지어 있었다….’
고인돌이 무더기로 발견된 것이고, 이것을 공장부지 조성 때문에 옮겨놓은 것이다. 특히 표지판에서 이른바 껴묻거리 유물로 보이는 돌칼, 돌화살촉 사진을 보고 마음이 한없이 설레었다.
지금까지 평택의 문헌 그 어떤 곳에서도 볼 수 없었던 것을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이다. 바로 지난해 발간된 『평택시사』는 물론 특히 평택문화유산의 시간적, 지역적 재분류 작업 등 평택문화유산 지정을 위한 기초조사로 실시한 『평택문화유산 연구조사용역-최종보고서』 어느 곳에도 이 같은 사실 기록이 없었다. 고인돌에 관한 평택시사를 다시 써야 할 판이다.

▲ 내천리고인돌   ⓒ월간 평택문화

‘내천리 고인돌’
마지막으로 내천리로 갔다. 내천리 고인돌은 참담했다. 1999년 경기도박물관의 평택시 문화유적 지표조사에서 보고된 1기의 고인돌. 이것은 2003년 세종대박물관에서 실시한 내천리유적 시굴조사를 통해 고인돌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2003년 조사에서 또 다른 고인돌 1기가 발견되었다. 현재 고인돌은 A사 공장 앞 정문 왼쪽에 복원해 놓았다. 처음 보고된 고인돌은 다른 돌과 함께 마구잡이로 쌓아놓은 것으로 보인다. 손에 쥔 것이 보물인 줄 모르는 경우가 많다. 평택지역에 산재한 고인돌이 그런 취급을 받는 것은 아닐까.

산업단지 조성으로 사라진 오성면 ‘양교리 고인돌’ 2기
문헌에는 오성면 양교리에 2기의 고인돌이 기록되어 있다. 고인돌이 위치한 곳은 다음과 같다.

‘청북면소재지에서 안중방면으로 39번 도로를 타고 3km 가량 내려오면 우측으로 오뚜기라면공장이 보인다.
공장 맞은편으로는 낮은 구릉들이 이어져 협곡을 이루는 구릉지대가 펼쳐지며, 구릉 사이로 소로가 나있다. 이 소로를 따라 600m 가량 들어가면, 도로 우측으로 판넬지붕의 축사와 공장이 보이는데, 고인돌은 이곳에서 맞은편으로 보이는 구릉 정상부(해발 80m)에 위치한다. 현재는 구릉 정상부의 북서사면 일부만 남아있고 남쪽과 북쪽사면은 절개한 상태이다.
고인돌은 총 2기가 남북으로 나란히 놓여있다. 평면 형태는 부채꼴로 부채 손잡이 부분에 해당되는 부분이 모두 북쪽을 향하고 있어 흥미롭다. 이는 인근으로 흐르는 교포천, 관리천, 진위천이 모두 남-북으로 굽이쳐 흐르는데 기인하는 것으로 보이며, 하천의 흐름에 장축방향을 맞춘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이 지역은 오성지방산업단지가 조성된 곳이다. 2004년 (재)고려문화재연구원의 지표 조사 당시 보고서에 고인돌이 존재할 뿐 현재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평택 고인돌 실태조사보존시급
삼성반도체 고덕산업단지 착공, 진위면 LG전자 확장, 미군기지 평택이전 확장, 민간제안개발사업…. 개발광풍에 내몰린 평택.
평택지역 고인돌 대부분은 개발사업과 관련해 부지에 대한 지표조사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그렇지 않은 것이라 하더라도 어떤 것은 무덤 옆에, 어떤 것은 길가에 있어 훼손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모두 보전 방안 마련이 하루가 급한 실정이다.
고인돌은 문화콘텐츠 가치로도 부족함이 없다. 평택에 산재한 고인돌의 실태파악과 이들의 보존 방안 마련에 평택시가 적극 나서야 할 시점이다. 

참고문헌

평택시·경기도박물관, 『平澤의 歷史와 文化遺蹟』(1999)
평택시사편찬위원회, 『평택시사』(2001)
이영문, 『고인돌 이야기』(2001)
(재)고려문화재연구원·경기도시공사, 『평택 오성지방산업단지 조성부지 문화유적 지표조사 보고서』(2004)
경기문화재단, 『경기도 문화유산 콘텐츠』(2006)
평택시·(사)한국미술사연구소, 『평택문화유산분포지도』(2007)
경기도박물관, 『경기도 고인돌』(2007)
(재)중앙문화재연구원, 『평택 수월암리 물류창고부지 문화재 지표조사보고서』(2010)
평택시사편찬위원회, 『평택시사』(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