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로사가 휩쓸고 간 과수들녘은 가을 수확을 앞둔 풍성함은 사라진 채 나무에서 떨어진 과일로 생명력을 잃어버린 듯 했다.

1일 오후 평택시 죽백동 521번지 죽백농장 일대.

수확을 얼마 남기지 않고 탐스러운 배들로 가득찼던 이 곳은 노란색과 흰색의 종이들만 모아 놓은 거대한 쓰레기장으로 돌변해 있었다.

지난 31일과 1일 밤사이 한반도를 덮친 제15호 태풍 루사가 몰고온 강한 바람이 1만여평의 면적에 심어진 배나무에 걸린 노란색과 흰종이로 감싸인 배중에 절반에 가까운 배를 떨어뜨렸기 때문이다.

이 농장 주인 국영표씨(54)는 “30여년동안 과수농사를 지었지만 올해같이 피해보긴 처음이다”며 떨어진 배를 주우며 길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태풍으로 국씨의 배밭은 땅바닥에 떨어진 배로 피해액 6천여만원에다 그나마 나무에 매달린 배 중에도 대부분 꼭지가 바람에 흔들린 탓에 열매가 더 이상 자랄 수 없게 돼 앞으로 입게 될 피해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같은시각 안성시 양성면 방신리 일대 과수농가도 사정은 마찬가지.

25년째 배농사를 짓고 있는 오형택씨(43)의 5천여평의 과수원은 출하를 목전에 둔 500∼600g짜리 성숙한 배들이 질퍽질퍽한 땅바닥에 헤아릴수 없을 정도로 떨어져 있었다.

가지가 여기저기 찢겨진 나무에는 크기가 작은 미성숙한 배들만 듬성듬성 달려 있을뿐 앙상한 모습을 보이는 등 태풍의 위력을 실감케 했다.

이같은 피해는 인근 30여가구의 과수농가도 같아 나무에 달려있는 배 중 절반에 가까운 정도의 낙과피해를 입었다.

게다가 강풍을 견뎌내 나무에 간신히 매달린 배들도 올여름 계속해서 내린 비로 예년에 비해 훨씬 적은 일조량에 열매크기가 극히 적을 것으로 예상되는데다 당도도 형편없을 것으로 보여 농민들의 근심을 한층 더 가중시키고 있다.

오씨는 “밤을 새워가며 피해를 막으려 했지만 사방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으로 속수무책이었다”며 망연자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