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출승인 2000.08.28

이삭 팬 들녘에 또다시 수마악몽 한숨

 

“이제 보름만 있으면 수확할 벼인데 하늘도 무심하시지…”

5일동안 내린 비는 풍년농사로 가슴을 설레이게 했던 안성천변 일대 농민들의 꿈을 송두리채 빼앗아 버렸다. 평택시 원평동을 비롯 안성천변 10만여평의 논이 불어난 물로 모두 침수됐기 때문이다.

2천여평에서 벼농사를 하고 있는 이병학씨(64·평택시 원평동). 이씨는 비가 내린 3일내내 뜬눈으로 밤을 새며 이번만은 수마가 그냥 지나가 주기를 간절히 빌었다. 그러나 하늘은 이씨의 애절한 바람을 끝내 외면했다.

3일동안 잠기지 않았던 논은 27일 오전 8시께 상류에서 불어난 물이 조금씩 내려오면서 황금들녘을 순식간에 덮어 버렸다.

벼이삭이 모두 잠겨버린 논에는 폐타이어와 나무조각 등 각종 쓰레기들이 밀려들어 쓰레기장을 방불케 했다. 이씨는 비가 그치면 한톨의 쌀이라도 건질 수도 있다는 희망으로 침수된 논으로 나가 떠내려오는 쓰레기더미를 걷어내지만 역부족이었다.

이곳에서 논농사를 하고 있는 농민들은 삼삼오오 강둑에 모여 벼는 보이지 않고 황토물만 흐르는 강을 원망스럽게 내려다 봐야만 했다.

이곳 안성천변의 논은 아산만 방조제공사가 완공되면서 만들어졌다. 농민들은 강폭이 좁아지면서 드러난 10여만평의 비옥한 땅을 내버려 둘 수가 없어 하천점용료를 지불한뒤 벼농사를 시작했다.

해마다 수해 피해가 있었지만 그동안은 벼이삭이 피기 전에 침수돼 그나마 피해가 크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번 수마는 달랐다. 수확을 보름정도 앞두고 모두 침수돼 건질 수 있는 벼가 거의 없기에 농심은 시커멓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인의식씨(70·평택시 원평동)는 “농사라고는 달랑 하천변 2천여평 뿐인데 모두 잠겨버렸다”며 “이곳 농민들 입장에서는 누구에게도 하소연할 수도 없는 처지여서 그저 속만 탄다”고 탄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