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가 경쟁인 시대. 오랜 기다림과 칼끝으로 묵묵히 나무에 글자와 그림 하나하나를 조각해 나가는 이규남 장인의 모습은 어떻게 비칠까.

목계(木溪) 이규남 선생은 지난 2004년도에 경기도 중요무형문화재 제40호 서각장으로 지정을 받았다. 서각은 나무나 돌에 글이나 그림을 새기는 것을 이른다.

이규남 장인은 우리나라 ‘3대 서각장인’으로 불리며 작품성을 널리 인정받고 있다. 한학과 서예를 고루 섭렵한데다 서예의 독특한 필치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칼끝으로 재현해 내며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연 것이다. 특히, 서각에 채색을 하는 것은 이규남 장인이 즐기는 기법으로 작품에 조형미가 더해져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규남 장인은 40년 넘게 서각을 천직으로 살아왔다. 그가 서각에 눈을 뜬 것은 1967년도다. 돌이켜 보면 운명처럼 다가왔다고 한다. 고등학교 2학년 재학 당시 사촌형님의 사진촬영 요청에 강화도 전등사를 찾았다. 거기서 스님이 보여준 팔만대장경 목판을 보는 순간, 머리가 아찔해져서 그만 댓돌에 주저앉고 말았다. 스님이 찬물을 머리에 들이붓고 나서야 깨어났다. 서각을 하겠다는 결심을 그때 굳혔다.

이후 이규남 장인은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106호 각자장으로 지정을 받은 철재 오옥진 장인에게 사사를 받고 현재에 이르렀다. 이규남 장인의 작품은 남한산성 수어장대, 수원화성 행궁 서, 서울대 규장각 등 전국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이규남 장인은 서각에 대해 “내 인생의 전부다. 작업이 휴식이고, 즐거움이자 보람이다. 빠져들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완성되어가는 보람도 느낀다. 내게 가장 잘 맞는 것이 서각”이라고 정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