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평택시, 그들에게 시민은 없었다
‘평택시, 그들에게 평택시민은 없었다.’ 신자유주의를 비판한 노엄 촘스키의 한국어 번역 책 제목 『그들에게 국민은 없다』를 바꾼 것이다. 민선 7기를 거쳐 지난 7월 출범한 민선 8기 평택시 비전이 ‘시민중심 새로운 평택’ 임을 감안할 때 그들에게 시민은 없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억지소리가 아닌가, 하고 따지는 사람이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히 말하거니와 ‘그들에게 시민은 없었다.’ 모두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평택복지재단(평택시 출연기관)이 운영하고 있는 8개 시 복지시설의 민간위탁 추진 과정에서 보여준 평택시 행정은 그랬다. 복지시설 민간위탁은 단순히 평택복지재단 만의 일로 좁혀서 볼 것이 아니다. 시 복지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이라고 할 만큼 큰 변화를 가져오는 사안이다. 8개라는 많은 시설이 대상인데다 시설 종사자와 이용자들이 적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 당연히 정책추진 과정에 공청회, 토론회, 시민의견수렴, 시의회와 충분한 사전 협의가 이뤄졌어야 했다.
그러나 시는 이들 절차 중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밟지 못했다. 아니, 하지 않았다고 하는 편이 사실에 가깝다. 시는 사전 공청회, 토론회와 관련해 “개최하려고도 했다. 하지만 (민간위탁에 대해) 의견이 찬·반으로 나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시간만 지체될 뿐 어차피 최종적인 결정은 시가 해야 되기 때문에 (공청회와 토론회를) 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귀를 의심케 하는, 민선 8기 평택시 인식의 한계를 보여주는 말이다. 행정에서 이만한 독선과 오만이 따로 있을까. 평택시 비전 ‘시민중심 새로운 평택’은 물론 ‘시민은 시정의 주체이며, 평택의 성장과 발전을 이끌 동반자임’ 이라는 설명이 무색한 실정이다.
졸속추진. 복지재단에 대한 관리·감독 부실 책임 전가, 목적이 불분명한 민간위탁, 복지재단에 대한 잘못된 진단과 처방…. 이번 복지시설 민간위탁 추진 과정에서 드러난 부실 투성이 행정의 문제점들이다. 이들 하나하나마다 적지 않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모두 자세히 살펴봐야 할 사안들이지만 여기서는 관련 개정 조례안 입법예고 기간에 시도했던 ‘시민무시’, 시민의 대의기관인 ‘시의회 무시’의 무모한 시 행정 하나만 더 살펴보고자 한다. 이것이 담고 있는 문제의 심각성이 다른 것들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시는 복지시설 민간위탁 추진을 위해 ‘평택시 복지재단 설립 및 운영에 관한 조례 일부 개정조례안’(개정 조례안)을 지난 7월 25일 입법예고 했다. 예고는 8월 14일까지 20일 간이다. 이는 행정절차법 제43조(예고기간)에 따른 것이다. 법은 ▲누구든지 예고된 입법안에 대하여 의견을 제출할 수 있고 ▲행정청은 해당 입법안에 대한 의견이 제출된 경우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이를 존중하여 처리하여야 하며 ▲의견을 제출한 자에게 그 제출된 의견의 처리결과를 통지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시는 개정 조례안 입법예고가 끝나기도 전인 8월 4일 언론 브리핑을 통해 ‘평택복지재단 산하시설 위탁만료에 따른 공개모집 추진’ 발표를 시도했으나 무산(평택저널 8월 5일자 보도) 되었다. 시의회의 강력 반발 때문이다. 여기서 법을 지키지 않는, 시의 막무가내 식 행정의 민낯을 본 것은 우리만이 아닐 것이다. 입법예고 기간에 관련 정책을 확정, 발표하려던 시도는 평택시 행정사상 초유의 일이다. 시의 이 같은 행태는 두 가지 측면에서 문제로 지적된다.
첫째는 시민의 자치입법 참여 박탈이다. 입법 예고는 ‘주민의 권리·의무 또는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조례·규칙·훈령·예규를 제정·또는 개정 또는 폐지함에 앞서 그 취지 및 주요 내용을 미리 예고하여 주민의사를 수렴·반영함으로써 주민의 자치입법에 대한 참여 기회를 확대하고 자치법규운용의 효율화에 목적’(시흥시 자지법규안 입법예고 조례)이 있다. 입법예고 기간 중 정책 확정 언론 브리핑 추진은 “시민의견은 필요 없다”는 뜻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는 명백한 시민의 자치입법 참여 박탈이다.
둘째, 대의기관인 시의회 무시다. 개정 조례안은 입법예고가 끝나면 시 집행부의 ‘조례규칙심의위원회’에서 심사한 뒤 의회로 제출되고, 이를 시의회가 심사 의결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하지만 시는 이에 아랑곳 하지 않았다. 개정 조례안이 조례규칙심의위와 시의회 심사를 받기도 전인 입법예고 단계에서 관련 정책을 확정해서 발표하려고 했다. 시민의 대표가 모인, 대의기관인 시의회를 이렇게 무시해도 된다는 것인지 아연실색할 따름이다.
시의 복지시설 민간위탁 추진은 일단 시의회의 제동으로 무산(평택저널 9월 29일자 보도)되었다. 당연한 결과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 하지 못한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그나마 이 말은 목적이 정당할 때 쓰인다. 그러나 시의 복지시설 민간위탁 추진은 ‘수단’(절차·과정)은 물론 ‘목적’마저 정당성 확보에 실패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복지시설 민간위탁 문제는 평택복지재단의 문제로 좁혀 볼 일이 아니다. 시 복지정책의 큰 틀에서 봐야 한다. 이번처럼 졸속처리는 더더욱 안 된다. 원점에서 시간을 두고, 시민과 충분한 협의와 의견수렴 절차를 거쳐 차분히 접근해야 한다.
시민과 시의회를 무시하는 것은 지방자치의 근간을 훼손하고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행위다. 이들에게 주권자인 시민이, 자신이 가진 가장 큰 회초리인 주민소환을 말해도 사실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다. 결과적으로 시의 이번 복지시설 민간위탁 추진 과정에서 ‘시민은 없었다.’ 이것이 민선 8기 평택시 행정의 전부가 아니기를 바란다.